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19세기 말 조선 정부는 농민들의 봉기를 막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요청해서 청·일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특별한 조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조청수륙무역장정을 맺도록 강요하였다.이들은 일본의 한반도 내정 개입이 조선을 강한 국가로 자립하게 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이 완충지대가 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조선 정부뿐만 아니라 개혁파들도 청·일.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조선 식민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가.이렇게 구한말의 역사는 하나의 원인에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너무나 복잡했다.
아울러 1894년 동학농민 전쟁 때 일본의 대규모 파병과 함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해 개입했다는 일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권에서 제기된 식민지 책임론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정치권에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었다.
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이들은 일본의 한반도 내정 개입이 조선을 강한 국가로 자립하게 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조선이 완충지대가 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
『월남망국사』가 베스트셀러였던 시대였다.이는 강대국의 옆에 있는 약소국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관계였다.